WEEKENDERMAN JOURNAL#CITY GUIDE #CULTURE #FOOD Photographer Mog jinwooInterview Editor Kim YeonjinEssay writer Park rodrigo sehee 실리카겔, 내 귀를 열고 나에게 들어오던 날. 뮤지션이 내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비집고 들어온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세상과 타협을 마지않으며 중년을 향해 치닫는 내 나이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 몇 년간 내 일상의 두터운 자장을 뚫어내는 참신한 뮤지션이 소원했던 터라 내 음악 듣기의 취향은 끝없이 회귀하고 있었다. 산울림, 들국화, 한대수를 나 홀로 역주행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나는 이들의 음악에 청춘을 내어줬던 세대는 아니다.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새앨범을 기다리는 낙으로 10대의 마지막 몇 년을 보냈고 ‘크라잉넛’ 보다 몇 살이나 어리다.) ‘레너드 코헨’의 리마스터링 라이브 앨범을 잠들 때 마다 틀어놓기를 몇 달째 이어가던 중이었다. 살짝 지겹다고 여겨지기도 했으나 플레이리스트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내 귀를 열고 들어오는 새로운 뮤지션이란 도무지 없었으니까. 그러던 즈음 친구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지금은 문화 비평을 하며 강단에 있지만 소싯적엔 스쿨밴드에 적을 둔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이었다. 장발을 어지럽게 돌려대며 무대에서 꽤나 방방 뛰었음은 물론이다. 업무와 관련된 통화의 말미에 친구는 ‘실리카겔’을 소개했다.“일단 들어봐. 완전히 새로운 녀석들이야.”“어떤 음악하는 친구들인데?”“어떤 음악? 그런 거 없어. 걔들은 그냥 실리카겔이야.”뮤지션 소개가 참 밑도 끝도 없었다. 그러나 의구심보다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그만큼 친구의 어조는 단호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음악 사이트와 유튜브에 들어갔다.실리카겔을 만나러.그리고 그날, 실리카겔은 내 귀를 열고 나에게 들어왔다. 실리카겔의 음악은 눈이 부신다. 세상에 횡행하는 달콤 말랑한 음악의 틈바구니에서 삐죽 고개를 내민 실리카겔의 창의적인 사운드는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다. 재즈에서 의미 없는 음절을 반복하는 스캣 창법처럼 웅얼거리듯이 중 저음으로 노래하는 실리카겔의 불분명한 가사 전달은 오히려 음악적 메시지가 가득했다. 온 세상이 부추기는 가수들의 고음 경쟁과 목청 대결에 보내는 강력한이의제기 같았고 래퍼들의 딜리버리 배틀에 딴죽을 거는 것 같았다. 그래 맞다. 우리가 잊고 있었지. 본래 음악을 듣는 다는 것은 온 몸의 감각을 열어 놓고, 음악이 만드는 분위기 속에 빠져드는 일 아니던가.실리카겔은 음악만을 제공하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 체험을 제공한다. 그들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공감각을 함께 겨냥하는 데 한없는 공을 들인다. 비단 음원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실리카겔의 완전체는 음악을 하는 다섯 멤버, 김건재(드럼), 구경모(베이스), 김한주(신디사이저), 김민수(기타), 최웅희(기타) 이외에 VJ(visual jockey) 멤버 이대희, 김민영이 함께 한다. VJ들은 실리카겔의 음악과 쌍둥이처럼 꼭 닮은 비주얼 아트 영상을 만들어 프로젝션 맵핑으로 무대를 미디어 파사드로 만든다. 공연장에 빔프로젝터를 설치해 무대를 향해 쏟아내는 영상은 멤버들의 온 몸을 몽환적으로 물들이고 사운드에 옷을 입혀 공연의 예술적 수준을 한껏 끌어올린다. 이렇게 시각화된 실리카겔의 음악은 관객을 공감각적으로 자극하며 무아지경에 빠트린다. VJ들의 역할은 라이브 무대에 그치지 않는다. 앨범 커버나 공연 포스터를 그래픽 아트로 만들어내고 비주얼 아트를 십분 활용해 관습에서 탈피한 세상에 없던 뮤직비디오를 만든다. 그래서 실리카겔의 음악은 눈이 부신다. 새로운 세대를 만나다. 기존에 뮤지션 선배들이 영상에 공을 들이거나 앨범 커버에 그래픽 아트를 선보이는 일이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운드와 비주얼이 원래부터 쌍생아인 듯 태생을 함께 두는 뮤지션은 없었다. 사운드와 비주얼을 찰떡처럼 하나로 뭉쳐내는 실리카겔의 탁월한 감각을 접하고 나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목격한 기분이 들었다. 음악 전문 채널이 하루 종일 틀어주는 화려한 영상이나 너무나도 진짜 같은 온라인 게임의 3D 그래픽이 삶에 새롭게 유입된 세대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원래부터 세상에 당연하게 존재했던 세대 말이다. 그 세대가 비주얼 요소들을 가지고 노는 감각은 내 또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러한 몇 가지 이유로 실리카겔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관심을 둔 지 얼마 안돼 ‘라이브 무대를 뒤집어 놓는 실력파 밴드’라는 입 소문을 빠르게 퍼트리며 홍대 인디씬을넘어 대중에게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EBS 스페이스 공감의 2016년 올해의 루키, 같은 해 K-루키즈 파이널 콘서트에서 대상을 받더니, 급기야 2017년 한국 대중 음악상 올해의 신인상 까지, 받을 수 있는 신인상은 모조리 휩쓸고 있었다. 좀 더 새롭고 충격적인 음악에 목마른 사람이 나 하나 뿐은 아닐 테니까. 어쩌면 살짝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매니저 연락처를 수소문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아니나 다를까 실리카겔은 이미 엄청나게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고 알량한 내 스케줄 몇 개와 겹치면서 만남은 멀어지고 또 멀어졌다. 새로운 EP 앨범을 작업 중이어서 멤버들이 한 날 한 시에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한 이후 계절이 한 번 바뀌는 동안 죄 없는 매니저를 쪼으고 또 쪼았다. 마침내 인터뷰 일정을 받아내던 날, 개인적으로 워낙 주목하던 밴드여서 그랬는지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가슴이 뛰었다. 걸그룹 인터뷰를 따낸 삼촌팬의 마음이 꼭 그러했을 것이다. 실리카겔은 하나의 장르다. 인터뷰 당일, 사진 촬영이 먼저 이루어졌다. 포토그래퍼의 어깨 너머로 실리카겔 멤버들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온갖 신인상을 휩쓴 밴드라서 어깨에 힘이 꽤나 들어가 있을 줄 알았는데, 겸손함과 차분함이 어우러져 첫인상은 ‘건실함’으로 와 닿았다. 이러한 사진 촬영이 아직은 몸에 익지 않은 듯 때때로 어색함을 마저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신인의 그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서는 충분한 아우라가 감지되었다. 피부가 유난히 뽀얗고 곱상하게 생긴 김한주가 특유의 중 저음으로 무어라 말 할 때는 상남자 뺨치는 포스가 풍겨서,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데도 혼자서 움찔움찔 했었다. 내가 훨씬 형인데 말이다.촬영을 마치고 멤버들과 둘러앉아 얘길 나누었다. 무엇보다 근황이 궁금했다.“새 앨범 작업이 후반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어요. 이전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녹음과 연주 모두 실리카겔 내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믹싱만 남았어요. 아직 앨범 커버, 뮤직비디오 패키지 디자인 , 등 할 일이 많긴 하지만요.” (김민수)역시나 사운드 작업 이외에도 비주얼 작업을 밴드 내부에 산적한 과제로 여기고 있었다. 이 밴드는 시각적인 작업을 왜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밴드의 탄생 자체에 있었다.“건제가 학교 다닐 때 미디어아트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평창 비엔날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근데 혼자 하기에 아까웠는지, 버거웠는지 함께할 사람을 구해서 저와 한주가 모여서 곡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든 곡을 비주얼 아트 영상과 함께 퍼포먼스로 공연을 했어요. 그게 실리카겔의 시초예요. 나중에도 몇 번 더 그런 작업을 하다가 지금의 멤버로 굳혀졌어요.” (구경모)막바지 작업 중이라는 새 앨범에는 또 얼마나 많은 들을 거리와 볼거리가 있을까. 한가지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실리카겔에게 음악적 철학을 물었다.“실리카겔의 작업 방식은 각자가 자신의 곡을 프로듀싱하고 실리카겔적으로 덧칠하고 섞는 거예요. 멤버들이 워낙 다채로운 사람들이라 음악적으로, 기술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각자가 변화를 경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음악이 네오사이키델릭, 아트록, 일렉트로닉 등으로 불리는데, 저는 그냥 장르고 뭐고 다 떠나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고 생각해요.” (김건재)몇 마디 못 나눈 거 같은데 시간은 훌쩍 흘러 약속된 시간이 끝나 있었다. 믹싱을 위해 작업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실리카겔의 리더인 김건재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어느 소설가에게 보낸 찬사를 빌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실리카겔은 하나의 장르다. 인터뷰 후기 인터뷰 이후에 실리카겔은 디스코그라피에 ‘SiO2.nH2O’라는 EP를 추가했다. 총 8곡이 수록되었는데 몇 곡은 리믹스 트랙이고 나머지는 멤버마다 한 곡씩 작사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았다. 각각의 멤버가 만드는 곡에 다른 멤버들이 유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게 앨범 정보지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멤버들 간의 찰진 음악적 교류를 바탕에 둔 실리카겔의 포지셔닝에 또 한 번 탄복했다. 실리카겔은 하나의 밴드임과 동시에 각자가 독립된 뮤지션이었다.인터뷰 때는 전혀 내색을 안 하던데, 알고 보니 이번 EP 앨범은 그들이 군대에 가기전에 세상에 내 놓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소식을 듣고 추가로 서면 인터뷰라도 할까 싶었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한참 인기몰이를 할 시기에 공백기를 가져야 하는 그들의 마음을 들쑤시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쨌든 앨범 하나를 던져주고 가니,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2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후에 그들이 들려줄 더욱 성숙한 음악과 영상을 기대하며, 새 앨범 ‘SiO2.nH2O’의 전곡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한다.